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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의 보고 속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한류 속으로...문화적 할인률, 새로운 소비층의 등장 그리고 민주화

by 맑은오늘~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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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읽게 된 '대중문화의 이해' 다소 딱딱한 표지와 출간된 지 다소 오래된 탓에 처음에는 선뜻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관심 있는 부분을 읽어 보면서 잘못된 선입관으로 자칫 좋은 기회를 놓칠 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사나 서점의 책소개에 보면 대학교의 언론학이나 문화론 시간에 교재로 많이 사용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경험한, 즉, 시험과 수업만 아니면 결코 읽고 싶지 않은 책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인 김창남 교수님의 유려(麗)하면서도 핵심 내용은 놓치지 않은 알찬 글쓰기 덕에 즐거운 지적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문화의 일반적인 정의에서부터 대중문화를 보는 관점,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사, 21세기 대중문화의 특징 그리고 대중문화를 둘러싼 각론까지 어느 내용하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알찬 까닭에 시간이 되는대로 이 책의 여러 부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오늘은 내용은 다른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분석이 매우 인상 깊었던 '한류와 아시아의 문화 정체성'을 중심으로 서평을 작성해볼까 합니다.


한류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 오대륙을 넘나드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그 이유를 3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각 이유마다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의 2판 개정이 2010년에 이루어진 까닭에 전개된 내용과 예시가 다소 시대에 뒤떨어 느낌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개인적인 생각을 첨부하였습니다.

 

문화적 할인률이 비교적 낮은 한국의 대중문화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을수록 장벽은 낮아지고 문화를 수용하는 데 따른 거부감이 줄어드는데 이에 대한 척도를 문화적 할인률이라고 합니다. 즉, 할인율이 낮을수록 타국의 문화가 쉽게 수용되는 반면,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높은 저항으로 인해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운 경우를 문화적 할인율이 높다고 표현합니다. 책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서구 문화에 비해 같은 아시아 지역의 문화권 내에서는 비교적 문화적 동질성이 크고 그만큼 문화적 할인률이 낮아 쉽게 수용이 이루어진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류가 아시아 지역에서 기반으로 태동하였고 현재까지도 규모만 놓고 보면 아시아가 최대 수요처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서술된 2010년 이후에도 한류는 중동과 유럽, 남미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의 중심인 북미 지역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따라서 한류의 확산이 단순히 아시아 지역 내 문화적 동질성만을 주요 원인으로 문화적 할인율이 낮다는 설명은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좀 더 많은 비교 연구와 분석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한국 문화에 내재된 인간 중심주의적 사상이 한국 특유의 흥과 풍류와 적절하게 케미를 이뤄 아시아를 넘어선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재미로 다가와 공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영미권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많은 서구권 시청자들이 꼽은 한국드라마의 강점 중 하나를 드라마 속 캐릭터와의 감정이입과 그들의 상황에 대한 공감 그러면서도 몰입을 높여주는 소소한 재미를 꼽고 있습니다. 즉, 한국 대중문화가 가지는 인간적 동질성이 지역을 넘어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춰 문화적 할인율을 낮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성장과 새로운 소비층의 형성

 

책에서는 동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특정되어지는 중화권 및 동남아 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소비 여력을 가진 소비층이 새롭게 대두된 반면 이들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킬만한 지역 내 대중문화의 부재가 한류가 급격히 확산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류 붐이 본격적으로 발흥하던 2000년대 초는 80~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문화 상품이 97년 중국 반환 이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서히 몰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때마침 개혁개방의 성숙과 WTO 가입 등으로 경제성장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던 중국을 위시한 중화권에서는 문화 상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만 갔지만 이를 만족시킬만한 한자 문화의 공백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런 시대적, 지역적 상황 속에 아시아에서 선진국으로 간주되던 한국의 위상이 주는 환상과 함께 앞서 언급한 문화적 유사성이 중화권 소비자가 큰 저항 없이 한국 대중문화를 손쉽게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년 '시크릿 가든', 2013년 '별에서 온 그대', 2016년 '태양의 후예' 등의 중화권 및 아시아 지역의 유행은 이런 배경의 좋은 예일 것입니다.

 

저 평점 응모자 숫자가 보이시나요? 3만도 아니고 30만도 아니라 300만입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적 요인과 배경은 역설적으로 해당 지역 대중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더 고도화되고 동시에 이를 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역문화 산업이 성장할수록 역설적으로 한류문화가 장기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2016년도말 사드 사태 이후 현재까지 드라마, K-pop과 같은 주류 한류 상품의 중국 내 유통이 눈에 띄고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겉으로 봤을 때는 정치적 변수가 문화의 진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이긴 하지만 내부적으론 중국 내에서 텐센트와 요쿠와 같은 로컬 플랫폼에서 출품된 중국 자본과 문화 기반의 로컬 문화 상품이 중화권과 동남아 대중에게 점차 인정받기 시작한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민주화가 미친 긍정적인 영향

 

책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급속하게 질적, 양적 성장을 이룬 시기를 1980년 대 후반 이후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면서부터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70~80년대는 군사정권 아래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물리적으로 제한되던 시기였던 만큼 문화 성장에 가장 중요한 자유로운 사고가 제한을 받던 때였습니다. 이처럼 군사독재 정권 아래 검열과 통제로 확장에 제한을 받던 한국의 대중문화는 1987년 군사정권의 몰락 이후 점차 표현과 상상력의 자유를 얻어갔고 그 과정에서 창의성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대중문화의 영역에 참여하면서 빠르게 성장해 가기 시작합니다.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 때 영화의 재미를 떠나 글쓴이는 가슴 속 한편에서 놀라움과 불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한석규과 송강호로 대변되는 국정원의 상대편으로 나오는 북한측 요원들이 질서를 파괴하려는 절대악만이 아닌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의 감정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 이 영화는 단순히 헐리웃 액션 영화의 한국식 아류작을 넘어 50여년간 수많은 창작자들을 짓눌렀던 붉은 금기를 뛰어넘는 시발점이었습니다

 

사실 21세기가 2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현실에서 서구의 관점이나 한국 자체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아시아 여러 제국() 중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일부 특권층이 아닌 민의가 정치에 반영되는 국가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한국의 민주주의 성장은 괄목할만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무한 성장하는데 충분한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들어 한류의 경제적 가능성을 엿본 대기업과 한류의 확장 과정에서 성장한 새로운 산업 주체들이 문화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자본을 투입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다시 확대/재생산되는 순환 단계에 이른 점도 한류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다만 글쓴이는 점차 과도해지는 상업주의와 시장논리가 문화 영역 전반을 지배하게 되면 다른 측면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제한받는 상황이 연출되고 이로 인해 문화가 활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은이는 민간 부문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의 대표격인 정부조차 한류의 문화적 의미에 주목하기보단 경제적 효과만 바라보는 단기적 시각에 근거하여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고려하는 점을 개탄하며 이 책의 서두에 아래와 같은 문구를 언급했습니다.

 

'문화보다 경제를 앞세우며 단기적인 가시적 성과를 노리는 전략은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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