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최근 일주일간 넷플릭스 속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징어 게임', 추석과 중추 연휴를 맞이하여 한국을 비롯한 중국에서 명실상부한 1위를 기록(중국의 경우 공식 통계는 없지만 언론매체와 중국 인터넷 반응을 감안할 때 비공식적으로 1위를 하고 있음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음)한데 이어 이번 주 중반부터 OTT 제국으로 불리는 북미에서도 넷플릭스 순위 공식 1위로 등극하여 그 화제성은 더욱 회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글쓴이도 이 영상물의 인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중국 내 반응을 블로그를 통해 빨리 번역해 전달했습니다만 이렇게 반응을 폭발적일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사실 주요 극의 전개상 중요한 소재인 게임은 70~90년대 한국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익숙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을 비롯한 비슷한 문화권인 동아시아를 넘어 한국 동네 놀이문화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북미 서구 시청자들에게도 수용되며 인기를 구가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래서 한번 개인적인 의견을 나열해 봤습니다. 그 첫번째 장은 인간관계입니다.
제 영상물 관련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극 중 4화와 6화에 대한 여러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아직 해당 부분을 시청하지 않은 분은 제 다른 포스팅을 먼저 구경해 주셨음 합니다.
4화 / 6화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
4화 중반부 쯤에서야 진행되기 시작한 3번째 게임은 단체전- 줄다리기입니다. 하지만 줄다리기라는 정보를 알지 못한 극 중 대다수 게임 참가자들은 3번째 게임 시작에 앞서 10명을 모아 팀을 구성하라는 지시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생각 없이 허둥대기만 하는 성기훈과 달리 조상우는 극 중 엘리트라는 역에 걸맞게 게임의 범위에 대한 논리적 추론을 통해 노인과 여자로 구성된 집단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남자 위주로 팀 구성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팀멤버 중 노인에 해당하는 오일남은 태생적 약점 때문에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강새벽은 제안과 반대로 자기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지영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기훈의 팀은 자연히 여성 3명에 노인이 1명 포함된 최약체팀이 편성되었습니다.

팀이 편성된 후 공개된 3번째 게임은 외형적으로 강력한 힘이 필요한 줄다리기, 기훈의 팀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나 오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오일남과 위기의 순간 스마트한 판단력을 보인 상우의 덕에 이 게임을 통과하게 됩니다. 죽느냐 살아남느냐와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모든 부를 쟁취하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서 극도에 위화감을 느끼던 멤버들은 단체 게임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미약하지만 작은 교류를 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상황도 6화 4번째 구슬치기 게임에서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앞선 3번째 게임과 마찬가지로 이번 게임에서도 참가자들은 진행에 앞서 2명으로 팀을 구성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이에 참여자들은 관성적으로 게임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가졌다고 판단되거나 아니면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상대방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4번째 게임은 불행히도 그 상대방을 이겨야만 통과할 수 있는 잔인한 놀이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극한 순간에 인간이 마주한 관계란? ]
6화는 4화를 통해 잠시나마 숨쉴 흐름을 흐름을 가질 수 있던 시청자에게 잔인한 선택을 볼 것을 강요하는 장입니다. 개인적으론 계속된 긴장감이 다소나마 풀렸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느꼈던 심리적 위화감은 훨씬 컸고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 곳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생명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쌓은 모든 것을 놓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인간에게 협력을 위해 내 앞에서 서있는 상대방과 그 관계는 무엇일까요? 극작가와 연출가는 4가지 모습을 50분에 걸쳐 시청자에게 천천히 보여줍니다.
성기훈 vs 오일남
이들의 관계는 6화까지 전개되는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성기훈은 1화부터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힘없는 약자인 오일남을 존중해 줬으며 이들은 게임장 외에서도 우연한 만남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여 왔습니다. 즉, 이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오랜 시간 교류를 통해 관계가 상당히 누적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죽여야 살 수 있는 게임에서 이들의 관계도 흔들립니다. 이전까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비췄던 성기훈조차 이 장에 이르러서는 조급함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존중의 대상이었던 오일남에게 짜증을 냅니다. 급기야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기의 순간 성기훈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의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런 성기훈의 모습에 오일남은 갑작스러운 치매 증상을 보이며, 상대방을 당황케 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려웠던 여러 상황에서도 남에 대한 측은지심을 보여온 성기훈에 대한 오일남의 배려로서 어쩌지 못하는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을 버리고 성기훈을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기억안나? 깜부끼리는 니것 내것이 없는 거야
<출처: 오징어 게임 제6화에서 오일남의 대사 중>
조상우 vs 압둘 알리
이 둘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성기훈/오일남의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호 신뢰는 구축되어 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상대방에 대한 양심을 느끼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대상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고 그에 따른 행동에서도 근 차이가 있습니다. 조상우는 기본 성품이 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필요성이 있는 순간 그것이 자신의 손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관계에 대한 일고의 고려 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반면 압둘 알리는 기본적인 성품도 순수한 데다 불법체류자인 자신에게 성의를 보여준 조상우에게 큰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이 신뢰를 택한 행동 때문에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게 됩니다.

신뢰를 가지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 어리석음이었다고 할까요?
강새벽 vs 지영
4가지 관계 중 가장 전형적인 클리쉐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에 따라선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어도 그럼에도 글쓴이에겐 마지막까지 그 관계가 무너지지 않길 바랬던 팀이었습니다. 강새벽과 지영은 극 중에서 관계를 두텁게 만들 시간적 여유도 교류도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화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팀 속의 인간관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교류가 있었습니다. 염화미소라고 할까요?
넌 왜 나한테 하자고 했는데?
너 밖에 없었어, 같이 해줄 것 같은 사람이...
나도 지금 그래
<출처: 오징어 게임 제6화에서 강새벽과 지영의 대화에서>
지영은 진심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강새벽을 위해 자신을 버려 그녀를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그녀가 팀을 이룰 때 승리가 절실했던 강새벽에게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지요.
난 무조건 이겨야 해.
그럼 나랑 해, 내가 무조건 이기게 해 줄게.
<출처: 오징어 게임 제6화에서 강새벽과 지영의 대화에서>
많은 시간을 쓰지 않고도 가장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관계가 이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생존 이외에 서로에게 어떠한 사심이 없었던 관계... 그들의 대화가 가리키는 여운..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던 표정...


고마워, 나랑 같이 해줘서...
<출처: 오징어 게임 제6화에서 지영의 외침>
후술한 장덕수의 인간관계가 정확히 반대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기에 더욱 마음 한켠에 남는 것 같습니다.
장덕수 vs No.278
이들은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정덕수와 No.278이 사용하는 어떠한 언어도 상대방에 대한 진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게임을 통과하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팀을 이뤘고 환경 변화로 인해 팀을 만들었던 상황이 바뀌자 거리낌 없이 상대방에게 총부리를 겨눴습니다.
사실 다른 팀의 긴장스러운 장면과 달리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인지 드라마에서 이 팀의 행동과 이야기 전개가 가장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만들고 극적인 운을 첨가하여 장덕수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점이 바로 그것이죠. 물론 이런 억지춘향식 전개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도 시사점은 있는데요, 잘 살펴보면 장덕수는 계속적으로 비인간적인 운을 통해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서서히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원하는 인적 장벽이 모두 사라진 후 운마저 사라졌을 때 과연 장덕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사라질 것이 예상되지만 만약 현실세계였다면 그리고 장덕수가 나였다면 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러 생각이 듭니다.
에필로그
아침에 삼막산을 운동하는 길에 마주한 원효대사의 글
4가지 상황에서 비롯된 각각의 인간관계가 가져온 인물들의 운명에 대하여 많은 생각거리를 줍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세상의 원리겠지만 그럼에도 부지불식 중에 놓치고 있는 지혜, 한번 공유해 봅니다.
사악한 사고로 벗을 만든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다음과 같은 한 부류의 무리가 있다.
그들의 성품에는 속임과 허위가 많아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현혹시키며,
남의 장점은 업신여기고 자기의 단점은 덮으려 한다.
이러한 의도로 혼란한 말을 꾸며 자기의 조그마한 장점을 헐뜯어 허물 인양하고
남의 단점은 칭찬하여 공덕인 양한다.
자기의 많은 단점을 찬양하여 덕으로 삼고, 남의 장점은 억눌러 허물로 삼는다.
<출처: 보살계본지범요기 -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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