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글쓴이가 3~4년전 학계에 계신 디지털영상 분야의 전문가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영화와 OTT에서 재생되는 드라마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나요?
당시에 제기했기 했던 질문이 오늘날 위기에 처한 극장영화산업을 예상한 바탕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당당하게 당시 저는 오늘날 상황을 예상할 정도로 업계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도,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소비 대상 영상 콘텐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 글쓴이가 시간 제약에 있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고자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적용
최근 드라마 회차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구독자 이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즈니플러스가 상황의 반전을 위해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박훈정 감독의 드라마 '폭군'은 그 분량이 고작 4부작에 불과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4회의 재생 시간이 약 2시간 40분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최근 헐리우드의 대작 블록버스터 상영 시간과 비슷합니다.
글쓴이의 기억 속 90년대에서부터 2000년 초까지 일반적인 드라마의 분량은 24부작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16부작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12부작으로 점차 분량 축소가 눈에 띄더니 이제는 4부작 드라마가 등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한국일보 8월 13일 기사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중심으로 기울어진 콘텐츠 제작 환경과 유통 구조 변화를 꼽았습니다.
드라마 회차가 줄어드는 배경에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첫째, 영화로 기획된 작품들이 극장 개봉 대신 OTT에 드라마로 공개되면서 회차가 짧아졌습니다. 극장에서 개봉이 기획된 영화가 투자자와 제작자에게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흥행에 성공하여 제작비 및 기타 발생한 비용을 회수하고 추가적인 수익을 노려야 합니다. 반면, OTT에 판매하면 흥행과 무관하게 약 10 퍼센트에 해당하는 mark-up 수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극장 입장료 상승으로 인해 영화 관람객의 영화 시청에 따른 효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극장용 영화의 성공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짐에 따라 업계의 보수적인 행태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최근 OTT에서 방영되고 있는 짧은 분량의 작품들은 기실 드라마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질은 영화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폭군'도 원래 영화로 기획되었으나 OTT로 공개되며 4부작 드라마로 변경되었습니다.
둘째, 방송 편성이란 제약으로 인해 제작 편수가 작품 선정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던 TV 플랫폼과 달리 OTT 플랫폼은 회차에 구애받지 않고 총제작비를 기준으로 판권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제작자들은 회차 제약 없이 자료로운 기획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짧은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덧붙여 점차 짧은 영상 시청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성향 또한 드라마의 제작 편수에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요인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드라마 제작사들에게는 매출 감소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국내 최대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인 스튜디오그래곤의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대비 35.7% 하락한 주요한 원인이 역시 전년 동기대비 절반 가까운 ‘TV 방송 회차 감소’에 있다는 점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 회차가 짧아지면서 단역 배우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더불어 드라마 스토리의 다양성도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짧은 회차의 드라마는 주로 주인공 서사에만 집중하게 되어, 다양한 인물의 세계관을 다루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글쓴이의 질문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은 아래와 같은 예시였습니다.
50년대에도 TV 보급으로 극장 영화의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제작자와 투자자들은 벤허와 같은 대작 작품을 등장시켜 극장과 영화만이 가지는 특성을 소비자에게 어필하였고 오늘날까지 산업의 명맥을 유지시켰다고 하네요.
창조산업의 끝부분에 있는 영화산업이 그 유구한 역사적 힘을 바탕으로 OTT의 파고라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보는 것도 미디어 콘텐츠 산업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재미있는 대목의 하나일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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