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과 함께하는 영상의 향연

영화 육사오 - 2시간 웃다 보면 즐겁게 시간이 가는 그곳, 줄거리, 결말 그리고 감상평

by 맑은오늘~ 2022. 9. 2.
반응형

프롤로그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에서 지식인들이나 취급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대중에게 들어냈습니다. 소설 속에서 악역인 호르헤는 여러 수도사들을 살인하였는데 이유는 사람들이 자꾸 이 책, 시학을 보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호르헤가 주목하고 거북하게 느꼈던 시학의 부분은 웃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였습니다. 세상의 진리는 모두 성경 안에 있고 죄인인 우리 인간은 이 안에서 진리를 찾고 구원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이 호르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속에서 '웃음'을 철학의 한 대상으로 만들어 많은 성직자에게 신학 안에서도 생각해봄 직할만 한 주제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을 하찮게 만드는 이  '웃음'은 인간이 경건한 마음을 잃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에 회의를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호르헤가 평생을 몸 마쳐 만들고자 했던 기독교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중대한 불경이었습니다.

 

너무 심각한 이야기로 이야기의 앞머리를 시작한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영화가 장미의 이름 속 성직자 호르헤가 그토록 증오한 웃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너무나 많은 웃음꺼리를 제공하기에 호르헤 입장에선 참 불경스러운 존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최소한 웃음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법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기에 영화 육사오를 소개할까 합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색다른 요소들과 특이한 시작

 

어둠이 짖게 깔린 비무장 지대, 오판된 정보로 인해 발생한 남과 북의 총격전 상황, 심각하지만 해학적인 육군 장교들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다소 심각한 듯싶으면서도 심드렁하게 육성기 대응을 준비하는 상대편까지, 영화 육사오는 시작부터 장르에 대한 혼란이 야기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이 범상하지 않은 시작은 지역 동네 술집에서 우연히 날라붙은 많은 비밀을 담은 로또 한장이 부대를 향하는 장교의 차량에 붙어 정문을 지키는 말년 병장에게 이어지고 이것이 57억 원짜리 당첨금을 보증하는 종이라는 커다란 사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곤 있지만 여전히 상대방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최북단 GP, 군생활에 대한 의욕이 거의 사라질 법한 말년 병장, 우리의 70년대 군 분위기가 느껴지는 북한 군영 그리고 로또... 영화 육사오는 잘못 사용하면 작품 자체를 망칠 법한 소재들을 영리하게 잘 버무린 특징이 있는 영화입니다. 사실 전혀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 전개 방식이지만 공동경비구역 JSA와 너무나 비슷한 배경과 설정이기에 어떤 분들은 '코믹판 공동경비구역 JSA'라고 빗대기도 합니다.

 

많은 특징을 가진 장점 그에 비해 일부에 불과한 단점

 

우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겠다면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1. No 신파, No 정치, No 메시지

 

이 영화의 배경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인들에게 아직도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 남북 분단과 대치상황, 의무복무입니다. 이 배경들이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 이에 대한 담론을 글이나 영상으로 만들면 대부분 무거운 내용을 바탕으로 특정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앞서 언급드린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영리하게 이런 내용들을 영리하게 잘 비볐지만 억지로 울음을 유도하지도,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정치적 메세지를 포함하지도 않았고 특히 현실적으론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2. 너무나 상식적인 전개, 그럼에도 어떻게 끝날까 궁금해지는 후반부

 

영화의 진행은 그냥 시간순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춰 적당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들로 인해 생긴 갈등이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다 해소되는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앞의 내용이 뭐였지', '끝나려면 이제 얼마나 남았지'와 같은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단순하면서 직관적이기에 참 관람 자체에 부담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상식적인 전개가 영화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벌어지는 사건들이 서서히 하나로 방향으로 만나면서 과연 이 사건들이 어떻게 후반부에 해소되고 결론으로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점이 이 영화의 두 번째 장점입니다.

 

3. 웃기는 모든 개그 요소가 다 들어가 있다

 

사람마다 반응을 보이는 개그 코드에는 미세하더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엄숙한 상황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전환하는 몸개그에 반응이 오는 반면, 어떤 분은 언어의 유희에서 오는 장단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연출가는 영화 속에 뭐 거의 모든 개그 요소를 다 집어놓은 듯합니다. 로또처럼 하나만 걸리라는 심정으로요. 그리고 배우들도 그 연기를 하는데 결코 몸을 사리질 않습니다. 너무 열연을 하여 저렇게 몸을 써도 될까 싶을 정도입니다(저는 역시나 브레이브 걸스의 춤에 반했습니다). 이이경 배우님의 능숙한 독일어 스피킹과 음문석 배우님의 재치 있는 번역 또한 최고의 웃음 코드 중 하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너무 많군요. 

 

 

그럼 단점은 뭘까요?

 

영화의 내용이나 전개와 같은 직접적인 단점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관객을 끌어당기는 마케팅에 다소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대문과도 같은 포스터가 영화의 미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내용이 코미디이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가볍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듯싶은데 그게 좀 지나쳐 유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 포스터만으로 영화를 선택하라고 했다면 그냥 B급 영화 이런 생각에 쓱 지나쳤을 듯싶습니다. 만약 포스터가 좀 더 영화를 잘 들어냈다면 입소문이 퍼지기 전에 얼리어답터들이 더 많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선을 넘지도, 그렇다고 열려놓지만도 않은 깔끔한 결말

 

저는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로 결말을 들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스포입니다). 57억 원이라는 금액은 너무나도 큽니다. 줄거리상 그 돈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특정 누구에게 갔다면, 반대로 그 행운이 엄청난 난맥 속에 결국 날아갔다면  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관객들에게 현실에선 존재하기 힘든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마무리된 느낌을 주거나 큰 실망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행히 이 영화는 커다란 행운이 7명의 등장인물 중 누구에 과하게 쏠리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알아서 생각하세요 등이 아닌,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식으로 마무리됩니다. 뭐랄까요, 이 정도로 다가온 운이라면 누구나 욕심부리지 않고 웃으면서 껴안고 서로의 행복을 바라 줄 수 있다고 할까요? 거기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민족 분단의 슬픔, 눈물겨운 헤어짐 등의 강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 잠시 스쳐간 인연에 소중히 하고 찾아온 행운을 잘 가지고 공존하자가 억지로 제가 찾아 쓴 주제의식입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영화와 관련은 없지만 8월 말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이 영면에 드셨습니다. 그가 누렸던 권위와 했던 일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죽음일 수 있지만 그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분의 묵인 하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우리도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앞으론 이런 배경이 역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하면 글을 마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