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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영화의 줄거리, 결말 그리

by 맑은오늘~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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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는데 가장 적당한 곳을 의대라 생각하여 진학한 주인공 율리에, 하지만 그녀는 인간의 신체에 큰 흥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대신 율리에는 육체보단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데 자신의 적성이 있다고 판단, 어머니의 강력한 지지 하에 자신의 진로를 마음 연구, 즉, 심리학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계기로 다시 사진 찍는데 흥미를 느낀 그녀는 한 치 앞이 보이진 않지만 사진작가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Verdens verste menneske)는 이처럼 이제 막 성년의 자리에 들어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젊은 여성 율리에의 때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칸르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프롤로그와 12개의 에피소드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서 소개한 율리에의 대학 때 모습이 영화가 소개하는 프롤로그에 해당됩니다.

12개의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어떤 사람과 사건을 마주치고 그 속에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까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20대 후반 여성의 1~2년 남짓 기간으로 짐작되는 시간동안 전개되는 흥미로운 이야기,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대한 줄거리와 결말, 감상평입니다.


영화의 전개


학술에 치우친 대학에서 벗어나 사진 촬영을 업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율리에는 어느 날 늦은 저녁 헬싱키 한 바에서 그녀의 20대 후반 인생에 사랑을 느끼게 해 준 만화 작가, '악셀'를 만나게 됩니다. 이지적이면서도 10 가까운 나이차를 극복한 사랑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제 막 사랑을 느낀 여성을 놓아주려는 이기적이지 않은 남자 악셀에게 율리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뜨거운 사랑을 느끼고 동거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20대의 순수한 열정만 가지곤 그녀가 악셀의 주변 환경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 차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다른 주변 환경과 가치관 그리고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감정적 균열 속에서 율리에는 점차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악셀과 같이 동행할 수 있는지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둘 간의 의견충돌은 40대를 넘어선 악셀이 율리에와 함께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됩니다. 이제 20대 후반, 자신이 컨트롤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율리에게 있어 악셀의 요구와 설득은 거부감만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실 뒤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언급되었다시피 그녀는 아이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30세 초반부터 싱글맘으로서 자신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와 다른 가정을 차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그녀의 삶에 방관적인 태도를 지닌 아버지 사이에 그녀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깊은 회의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싶네요.

설상가상 율리에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자신의 남자 친구 악셀의 주변인을 맴도는 현실 속에서 큰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능력도 있으면서 자신에게 따뜻한 연인 옆에서 역설적으로 더 큰 고독에 휩싸이는 율리에, 이런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새로 찾아온 인연에 그녀의 연인과 다른 열정적인 끌림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그 인연을 우연한 계기로 또 만났을 때 그녀는 그녀가 악셀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릴 것을 결심합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심에 당황한 악셀은 그녀를 속된 말로 쿨하게 보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떠나고 싶은 자와 놓을 수 없는 자 사이의 감정 변화가 이 영화의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탈출구로 극한 흥분감에 휩싸인 그녀에겐 그 어떠한 논리적인 이야기도 다가오지 않지요. 결국 그녀는 악셀을 떠나 새로운 인연과 또 다른 삶을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영화 속의 특별한 지점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욕망 사이에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유럽식 연애관


앞서 줄거리에서 자극적이 부분은 최대한 자제하고 건조하게 기술했지만 사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과 장면이 영화의 진행 내내 율리에라는 캐릭터를 통해 표출됩니다. 굳이 필요할까 싶을 만한 자극적인 남녀의 행위 장면도 그렇고 율리에의 행동 또한 그녀 입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받기 힘들 듯싶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실질적으로 '바람'이라고 규정할 행동조차도 상대방과 정당화를 하면서 그녀는 그 상황을 즐기죠.

영화 안에서 율리에는 뛰어난 두뇌와 과단성이 있는 행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어떤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부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굴레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가도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지점에선 별다른 타협 없이 쉽게 싫증을 내고 그곳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당연히 이런 철저한 개인 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한 행동은 주변과 커다란 마찰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가 그런 행동에 별도의 성찰을 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저는 이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면 그 행동의 동기나 그 행동으로 타인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선 크게 탓하지 않는 유럽식 사고나 행동관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작 후 2시간 안에 끝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느껴지는 억지 당위적 결말

하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서 한 젊은 여성의 좌우충돌식 행동을 기발하게 스토리텔링화 시킨 이 영화는 후반부에 끝을 내기 위해 너무나 조급하게 결말을 향해 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전 남자 친구 악셀의 췌장암 발병 소식과 그의 병세 악화는 영화적 전개로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갑작스러운 임신과 함께 정확한 인과관계없이 아이를 유산하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처럼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다'는 주제의식을 향하게 하기 위한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천의 얼굴을 보여준 여주의 연기는 칭찬을 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겪고 난 후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 후 에필로그에서의 주인공 율리에 모습은 그전과 너무나 다른 존재로 느껴집니다. 이젠 과거의 연인을 보더라도 약간의 반가움이 지나칠 뿐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얼굴 표정은 바로 1시간 전 새로운 사랑을 찾아 한가득 설렘을 안고 달리는 표정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묘한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를 실제로 보는 느낌이랄까요?

사람에 따라 이해하기 힘든 개인의 일탈스러운 언행을 걸러낼 수 있다면 줄리에라는 캐릭터를 구현하는 배우(레나테 레인스베)의 연기는 정말 일품입니다. 괜히 칸느로부터 상을 수상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에필로그


이 영화의 원제는 한국에서 소개된 제목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사람(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 젊은 사람의 사랑이야기'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데 제작사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에 주안점을 둔 반면 한국의 수입 배급사는 '젊은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주안점을 둔 듯싶습니다.

저는 둘 다 맞는 것 같고 둘 다 만족합니다만 한국인들에게 편한 집에서 벗어나 멀리 극장까지 와서 익숙지 않은 유럽 영화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 관계자들의 피 · 땀 · 눈물이 느껴지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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