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역사소설은 필연적으로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자칫 독자들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장르 소설과 달리 역사소설 작가는 시작에서부터 결말로 나열된 사실들에 서사를 불어넣기 위해 특히 고심할 수밖에 없다.
역사소설 작가는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사실과 사실 한가운데 또는 기록되지 않은 간극에 배회하는 실존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자신의 고찰과 추리 그리고 상상력을 가미하여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 작업이 성공하면 그동안 사람들에게 건조하게 펼쳐졌던 사실의 나열이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생명력을 얻게 되고 텍스트 속을 방랑하는 독자는 상상력이 주는 읽기의 즐거움에 중독되어 간다. 역사소설의 묘미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원래 존재하던 장소와 기록된 특정 시점, 동일한 인물, 같은 사건 그런데 내가 알던 바와 묘하게 어긋나 있다!
와시오 우코 작 '아케치 미쓰히데'는 손에 책을 든 독자에게 고맙게도 이런 기회를 준다.
(보통 한국에서는 아케치 미츠히데도 쓰이는데 이 책은 제목에 미쓰히데로 표현했기에 그대로 미쓰히데를 사용하였다)
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 타인과 결코 완벽하게 연결될 수 없는, 그래서 고독한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타인이 느끼는 감정이 같다고 믿는 공감이 중요한 이유다. 물론 공감이라는 한자가 의미하는 바와 달리 그 감정은 완전히 같지 않고 미세하게라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 공감이 결정적인 순간에 역할을 했다면 '혼노사의 변은 없었거나 최소한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 소설이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다.
100년 아니 일본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혁신적인 사고를 갖춘 천재, 오다 노부나가는 구체제를 타파함에 있어 거침이 없다. 그리고 그 천재성과 더불어 다른 사람과 다른 감정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글쓴이의 고찰 결과이다. 일단 소설속 노부나가는 다른 사람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질 못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의 성공가도는 설상가상 그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유인조차 제거한 듯싶다.
한편, 기존 체제에 대한 강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자 하는 소설 속 미쓰히데는 남보다 더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미츠히데의 관점에서 노부나가의 행동은 지금까지 오다 군단의 성공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 의도나 의미가 결코 이해되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지지 않는다. 거기다 남들보다 섬세한 미쓰히데는 이런 모순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도 못할뿐더러 오다 노부나가라는 거물이란 환경을 개선할 마땅할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전국시대라는 혼란스러운 세계를 진정시키자는 큰 그림에만 합의된 두 인물이 그 과정에서 추구하는 방식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계속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과정을 시나브로 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노부나가의 시동 모리 난마루를 이 둘의 관계가 어긋나는데 개연성을 부여하는데 촉매 역할로 활용하는 영리함도 보여준다.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파국으로 이르는 과정에 어떤 희망도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고의 가능성 없는 기대를 거는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소설 상' 두 인물은 상대방에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은 결코 알지 못하였으며, 이를 확인할 계기도 여건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혼노사의 변'인 것이다.
마무리
일본 역사, 특히, 전국시대 소설의 최대 진입 장벽은 익숙치 않은 사람이름의 표기법일 것이다. 이 책은 글 아래 한 땀 한 땀 자세한 주석으로 그 약점을 보완하려 하는 점에서 매우 친절하다. 한국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와 인물에 이윤이라는 고려에 여러 갈등이 있을 법했음에도 인쇄를 해준 출판사에게 감사를 느낀다. 독자들도 한번 흥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지식과 지혜의 보고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곱 명의 술래잡기(七人の鬼ごっこ)/미쓰다 신조/북로드 (2) | 2024.08.01 |
---|---|
세 개의 전쟁 - 강대국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김정섭/프시케의 숲 (0) | 2024.07.25 |
붉은 옷의 어둠(赫衣の闇)/미쓰다 신조/비채 (3) | 2024.07.16 |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3) | 2023.08.29 |
인플레이션이 모든 경제 주체에게 나쁘기만 한 걸까? - 인플레이션세와 정부 부채의 상관관계 (4) | 2022.08.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