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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의 바다 위에서/가업승계

절반의 소유가 가진 불안한 사업 토대 -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그려진 가업 승계의 어려움

by 맑은오늘~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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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올해 1월 나름 의미 있게 봤던 영화인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의 줄거리도 흥미가 있었지만 영화의 배경이 글쓴이가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이 되어 있는 까닭에 더욱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하나씩 포스팅을 통해 제가 하고 있는 업무 지식을 바탕으로 가업, 즉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 측면에서 '하우스 오브 구찌'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절반의 소유가 가진 불안한 사업 토대


영화는 한 가문의 성(姓)이 브랜드와 사업체로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 2대와 3대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 구찌 비즈니스의 소유권은 형인 알도 구찌와 동생인 로돌프 구찌에 의해 각각 50 대 50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선 동생인 로돌프 구찌는 사업가로서 야심이 그리 크지 않은 듯싶습니다. 그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에 의해 묘사된 바에 따르면 집안의 반대가 있는 결혼(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가 그의 아내와 대화에서 자신에게는 절반의 독일 피가 섞여 있다며 자조 섞인 언급을 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자신의 조카 파올로 구찌의 억지에 대한 모욕을 통해 자신의 히트 상품을 강조한 부분에서 그 또한 유서 깊은 명품 제조업자 가문의 후예임이 들어납니다.


반면, 형 알도 구찌는 전형적인 사업가입니다. 그는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할 뿐만 아니라 밀라노 지역의 로컬 브랜드에 불과했던 '구찌'를 뉴욕을 거점으로 실제 구찌 브랜드를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알도는 배우 알 파치노의 노련한 연기를 통해 소위 집안의 큰 형님 또는 큰 어른으로서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사업가로서 매우 독단적으로 냉혹한 아우라를 풍기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외양상 구찌 가문과 가업을 명품에 반열에 올린 우예좋은 형제로 보여집니디만 그 내면에는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갈등과 팽팽한 긴장감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아들 마우리치오의 독단적인 결정에 상심하고 있는 동생 로돌프의 집에 방문한 형 알로 구찌, 하지만 그는 단순히 건강이 나빠지고 의기소침해진 동생의 처지를 위로하고자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70년대 말 버블경기의 최고점에 다가가고 있던 신흥 경제 대국 일본의 소비층을 공략해야 하는 환경적 변화 앞, 지분의 절반을 들고 있는 동생에서 사업 확장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생 로돌프는 형의 생각에 별반 동의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형의 공격적 사업 방식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알도 구찌는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이 한 장면이 두 형제의 모든 것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최소한 가업 방향에 대하여 그들의 관계가 평탄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구찌 가업을 이끌었다는 생각을 하는 알도의 입장에서 그는 동생의 태도가 매우 못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분의 절반을 가지고 소유권의 한 축을 이루는 동생의 입김을 무시할 순 없겠죠. 그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알도의 심리가 상당히 뒤틀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찌의 사업 방향에 의견을 제시하는 동생의 아들인 조카 앞에서 구찌를 누가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를 중얼거리는 그가 어투에 이 부분이 잘 드러나죠.


후대 가업 승계에 있어 지분이 가지는 의미


사업적으로 성공한 부모가 여러 명의 자식을 두고 있을 때 사업을 누구에게 이전시킬 것인지, 이전할 때 소유권은 얼마나 넘겨줘야 할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계속 제기되어 온 답 없는 문제입니다. 태어난 순서를 제외하고 차별을 두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과 사업에 대한 소유가 여러 명에 분산되어 있을 때 예상되는 여러 어려움을 알고 있는 사업가 입장에서 가업 승계는 사업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가업 측면에서 구찌 비즈니스는 2대 때부터 이미 좋지 않은 결과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구찌 가업은 두 형제의 소유권이 절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의견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어떠한 사업도 진행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대는 자신이 이룩한 것을 자식들에게 차별 없이 넘겨줬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에서는 해방되었을지 몰라도 사업적 측면에서 동일지분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인간인 이상 사업에 관한 관점을 일치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문제입니다. 더구나 이제 혈연적으로 멀어진 3대에 가서 그 모순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로 생각해 보는 가업승계, 다음에는 오리지널 '구찌'를 가지지 않은 가족은 진정 구찌인이 될 수 없는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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