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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 - 추억은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뿐 행복할 미래가 될 수 없음을 알려준 영화

맑은오늘~ 2023. 9. 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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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목의 작법을 보는 순간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일꺼라는 직감이 드는 영화,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는 상영시간이 90분이 채 안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요즘 개봉되는 영화들 대부분이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출 비용 대비 상영관에 앉아 있는 시간이 짧다는 점에서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법합니다. 거기다 영화 자체의 줄거리, 전개 방식과 결말 모두 전형적이기까지 합니다. 어찌보면 이 영화가 갖춘 외형만 보자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상영관까지 가서 시간을 써야 하는지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킬 법합니다.
 

 
하지만 저는 과감히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고등학생의 우연한 만남과 다소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과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 그리고 해소와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영화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 왜 이 영화가 볼 가치가 있는지 지금부터 써볼까 합니다.


 

우연, 우연, 우연

 
영화의 남주 '토모 카오루',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어느 하교길 그는 시골 전철역에서 가슴에 품은 종이 봉투가 젖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주 '하나시로 안즈'를 '우연히' 만나 다소 시큰둥한 말투로 우산을 빌려주고 전화번호를 교환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카오루와 안즈는 같은 반 학생과 도쿄에서 온 전학생으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술취한 아버지의 주정을 피해 무작정 밖에서 방황하다 우연히 현실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우라시마 터널을 발견한 카오루, 그는 역시 '우연히' 우라시마 터널을 알게된 안즈와 터널의 비밀을 공유하고 각자가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관계가 됩니다.
 

우라시마 터널, 너의 정체는 뭐니?

 
영화 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대상인 우라시마 터널의 안과 밖은 다른 시간 흐름을 가지고 있어 만약 누군가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터널 밖으로 돌아왔면 오랜 시간이 흐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카오루와 안즈가 찾아낸 안과 밖의 시간 차는 터널 안 1초당 현실의 36분(터널 안 10초, 바깥 세상에선 6시간)입니다. 
 
카오루와 안즈가 우라시마 터널을 주목한데는 안과 밖간의 시간차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우라시마 터널은 그 안에 들어가면 개인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동생의 죽음으로 가출한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버지를 둔 카오루에겐 붕괴된 가정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곳으로, 할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세상에 주목받는 만화작가가 되고자 하는 안즈에겐 재능을 부여할 수 있는 곳으로 우라시마 터널은 두 남녀가 맘 속 깊은 곳에 간직한 희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우라시마 터널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카오루와 안즈 모두 우라시마 터널을 통해 개개인의 소원을 이루고 싶었지만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그들의 소원은 그들이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중반부 카오루는 죽은 동생을 살리고자 현실을 버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안즈는 발견한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준 세계에 희망을 가지고 현실에 남는 선택을 합니다.  이는 우라시마 터널이 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데 할 수 있는 역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우라시마 터널은 과거에 있었지만 현재에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현재에 실현시킬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라시마 터널의 정체가 들어납니다. 우라시마 터널은 사실 추억을 은유화한 존재입니다.
 

나무줄기에 덕지덕지 붙은 사진이 기억의 은유라 할 수 있습니다

 
카오루의 소원은 동생의 죽음을 되돌려 자신이 꿈꿔온 세계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즈의 소원은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재능을 얻어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만드는데 주안점이 있었습니다. 추억은 과거의 존재를 현재로 가져올 수 있지만 과거에 없던 현재의 존재를 미래로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은 과거 속 추억을 찾아 자신의 기억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동굴 안으로 들어간 카오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꿈을 쫓아 현실의 시간을 개척(동굴 밖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작가로써 계속 작품을 만들어간 안즈)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카오루는 소원을 이뤘을까?

 
터널 안에서 카오루는 동생을 만났습니다. 잠시나마 행복을 느낀 카오루. 하지만 기억 속 모두의 행복을 추구했던 카오루의 동생은 추억 속에서 허우적대는 오빠에게 과거가 아닌 현재의 카오루를 일깨워주며, 현재에서 미래의 행복을 찾을 것을 조심스럽게 알려 줍니다. 이제 카오루는 자신이 꿈꾸던 행복이 결코 과거에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그는 과거 속 추억을 뒤로 하고 '안즈와의 새로운' 행복을 찾아 터널 밖으로 나옵니다. 터널 밖 그들의 재회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녹치 않아 보입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이를 암시한 것이겠죠. 하지만 젊은 시절 그들이 함께 한 추억을 상징하는 녹슨 우산 또한 그들의 인연이 미래 함께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필로그

이렇게 영화를 거대한 은유 덩어리로 보니까 제목도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은유의 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을 향한다'는 건 젊은 시절 추억에 파묻혀 과거에 머무는 현재를 살지,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향하는 현재를 살지를 고민한다는 의미일 듯 싶습니다.
 
'이별의 출구'는 영화를 보기 전엔 글자 그대로 이별하는 결론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보고 원문의 제목(さよならの出口)을 보니 '방황의 마무리'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아래 대만에서 상영된 포스터에서는 再见 -'재회'를 강조하네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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