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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사유체계와 사상 - 첫번째 이야기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규진'이는 정말 '규진'일까?

맑은오늘~ 2021. 9. 2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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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욕망의 끝은 어딘가'라는 주제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얼마 전 마무리된 드라마 '펜트하우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었는 다양한 여러 인물들, 주단태, 천서진, 오윤희, 심수련 등을 등장시켜 공중파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막장의 끝은 어디인지를 테스트한 좋은 장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글쓴이가 특히 주목한 인물은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에서, 평상시 어린애와 같은 순수성을 가진 듯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가면을 벗어던지는 봉태규 씨가 연기한 '이규진'입니다. 주연이라고 하기엔 전체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성숙함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이규진이란 캐릭터는 조금 모자란 존재처럼 묘사되지만 하지만 사건을 계획하거나 일을 꾸밀 때를 보면 다른 욕망적 인물들과 결코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세심한 측면까지 있기에 매우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갑자기 펜트하우스의 이규진을 초대한 이유는 최근 열독 중에 있는 책, '구조주의 - 사유체계와 사상'에서 나오는 설명 중 일부가 배우 봉태규씨가 관찰하고 표현하려 했던 이규진이란 캐릭터와 너무나 맞닿아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참고로 독자분들은 전 아직 구조주의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해를 근거로 포스팅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래 인터뷰 내용은 '펜트하우스 스페셜, 540일간의 대장정'에서 배우 봉태규씨가 인터뷰한 내용을 발췌하여 재편집한 것입니다.

 

 

규진이라고 하는 캐릭터는 시놉시스에 쓰여 있는 캐릭터만 보자면
사실 상당히 정영화된 캐릭터다.

부잣집 아들래미에 마마보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캐릭터

 

(시청자들에게) 마마보이라고 하는 정영화된 이미지가 있다.
'애기같은 말투 유약하다'는 틀을 깨기 위해 (중략) 첫째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하는 말과 행동이 3인칭으로 너라고 하는 걸 싫어한다
그 시기가 굉장히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존재감에 대하여 엄청나게 의식하고 생각할 때거든요.

 

 

 

'구조주의 - 사유체계와 사상'에서 저자는 현재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체로서 '자아'의 허상을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사유를 빌려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자신의 실체와 동일성(identity)을 알리는 '기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에게 주어진 '이름'은 그렇게 상식적 차원에서 간단히 규정할 수 없습니다.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는 자신을 인식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의 이름이 '규진'이라고 하면 그 아이는 부모나 남들이 자신을 '규진'이라고 부르는 관계에서 동일성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가 겨우 말문을 열게 되자마자 그는 스스로를 '규진'이라고 부릅니다. 즉,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는 규진보다 훨씬 늦게 상징화됩니다. 따라서 그 아이는 배고픈 경우 '내'가 배고픈 것이 아니라 '규진'이가 배고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라캉의 용어로 설명하면 자아라는 '나'와 '규진' 사이에는 하나의 구조적 '입벌림'이나 '쪼개진 틈'이 있습니다. 자아와 규진 간의 동일성은 최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남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즉, 타인과 다르다는 인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대단한 '자아'나 나와 자아가 같다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일성은 그 자체로 홀로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변별적 차이(distictive feature)에 의한 상징적 기호에 불과합니다.

 

조금 더 기호주의가 생각하는 자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분석의 대가 라캉의 '거울 단계'이론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기의 내용은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쓴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서 발췌한 내용에 약간의 개인적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거울 단계 이론이란 라캉이 1936년에 발표한 것으로 주체의 형성에 거울에 비친 영상이 지닌 결정적인 중요성을 설명한 것입니다.

 

 

거울 단계란 유아가 생후 6개월쯤 되어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흥미를 가지고 궁극적으로 강렬한 희열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상당히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생후 6개월이면 자신의 힘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영양 섭취도 타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상태죠. 이때 느끼는 무질서한 신체 감각은 유아에게 자기를 둘러싼 세계와의 '원초적 부조화'로 인한 불쾌감을 야기시킵니다. 이런 유아가 어느 날 거울을 통해 비친 상이 '나'라는 것을 직관하게 됩니다. 이 순간 통일된 시각적인 상을 통해 단번에 '나'를 파악하게 됩니다. '아, 이것이 '나'인가'라며 아이는 깊은 안도와 함께 희열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거울 단계는 인간적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동시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된 상의 획득은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균열을 '나'의 내부에 불러옵니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이유를 막론하고 '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믿고 거기에 매달려 자신의 동일성(identity)를 얻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적인 한계 때문에 다츠루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광기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구조주의 철학은 사상을 전개한 학자들의 어려운 문체와 함께 다루고 있는 주제가 난해하고 범위도 방대하여 접근이 무척 어려운 사조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학문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하여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라는 틀을 분석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과 현상 등에 대하여 다른 시각을 제공합니다. 덕분에 오늘은 배우 봉태규 님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자아가 성숙하지 않은 마마보이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부한 '자아', '동일성(idnetity)', '거울 단계 이론'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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