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의 보고 속에서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 변화되고 있는 환경 속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냉정해져야 할 한일관계

맑은오늘~ 2021. 8. 24. 11:52
반응형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4~5년 사이 여러 부문에서 더욱 심화된 듯 싶습니다. 특히  과거 스포츠와 역사, 일부 정치인의 언행 등 일부 협소한 영역에서만 제한되던 비판이 일본과 경제 규모 그리고 힘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이젠 산업과 사회 전반의 비교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의도섞인 비하까지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물론 한국인인 글쓴이의 입장에서 한국인들의 이런 자세가 결코 이유없이 형성되진 않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 한국인은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과거와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일본 및 일본인과 계속 관계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감안한다면 일본국민과의 감정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 길임은 분명합니다.

 

강상중 선생의 저서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는 일본 주류 학계에 속해 있었으면서도 재일교포 2세로서 양 국가의 경계를 서야 했던 지식인의 입장이 건조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러나 자신의 뿌리에 대한 걱정이 드러나도록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일본 사회의 지식인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일본인들(이 책은 일본에서 처음 발행되었습니다)에게 한일 양국간 앙금의 원인을 제시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지를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저자의 태생적 한계나 상업적 목적으로 한국 또는 일본 한쪽 입장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는 서술된 다른 일본 관련 서적들과는 격이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감상적이든 객관적이든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 희망 중 하나가 갈라진 조국의 화해와 결합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사항과는 별도로 많은 한국인들은 동족상잔과 이로 인한 증오심, 그동안 이념 대립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요인으로 실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판문점 회담 등 과거와 다른 교류와 화해 무드는 한민족에게 그동안 가능성에만 머물러야 했던 남북 화합에 기대감을 최고조로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일 문제나 한미일 공조 그리고 자국인 납치 문제 등을 통해 모처럼 고조된 분위기에 찬물을 껴얻는 주력하는 일본 정치권의 모습은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습니다. 저자가 일본측에 제시하는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어떤 식으로든 분단체제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 정치인들과 여론은 한반도 분단 체제를 전제로 한 국가 안보를 내세우던 과거의 모습에서 거의 전진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 중대사를 책임지는 관련자들은 주변 국가의 몇 가지 변화만으로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봐선 안되겠지만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염원을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있다면 이를 역행하는 자세가 가져올 반발도 감안해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민족 화합에 어떤 형태로든 불협화음을 넣는 듯한 일본의 행태는 적반하장을 넘어 미래 통일 한국을 방해하려는 일본이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한국인 대다수가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근대에 대한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도 오늘날 일본과 한국의 접근과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동아시아가 근대로 정의하는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는 일본측에서 보면 대외적으로 영광의 시기였습니다. 뛰어난 선지자들 덕에 다른 지역의 시행착오와 달리 근대 일본은 빠른 개방과 개혁으로 당시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 중의 유일한 열강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과 그 구성원들에게 이 시기는 상실과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었고 특히 일본에게 식민지가 된 한국은 오랜 기간 이런 감정과 더불어 성공한 자에게 저항을 했던 때였습니다. 근대의 종결을 상징하는 1945년 8월 15일에 대한 양국간의 해석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회복의 의미인 ‘광복’인 반면 일본은 ‘종전’이라는 전쟁의 종결에 방점을 둔 다소 중립적인 의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의 이런 모습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침략을 통해 많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잘못된 행동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너무 넓은 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한 만주사변과 전반적인 국력차를 무시한 태평양전쟁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추락시킨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이처럼 인식의 차이가 너무나 명확한 상황에서 1950년대 이를 중재해야 했던 미국은 냉전상황과 자국의 지역적 패권 측면에서 양국간의 과거사와 감정 문제를 봉합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더구나 합의가 구체화되던 1960년대 전후 경제 회복이 이루어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3년간의 내전으로 정치,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부분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합의 자체가 대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졌을 리 만무합니다.

저자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보상이 아닌 일본의 경제 협력 방식으로 체결된 합의에 일본의 입장은 강하게 반영된 반면 한국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지만 경제 개발이 필요한 한국의 박대통령 정권에서 이를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른 쪽의 어려운 상황을 십분 활용한 합의는 이후 두 국가의 역사적 인식에 대한 간극을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더 넓히는 결과를 불러 옵니다. 최근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법원의 보상판결이라는 사건에 관하여 일본 정치권은 마무리된 국제적 합의를 위반했다면 극렬한 반응을 보인 반면 한국측은 국가간 합의와 개인간 배상을 별개라는 주장과 함께 기존 합의 또한 합당하지 않았다는 점을 은연중에 비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정치권은 양국간의 해묵은 감정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 국면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강상중 선생은 책 곳곳에 서로가 타협할 것을 목표로 상대방의 목적을 일부 용인하고 자신의 목적을 일부 포기하는 열린 자세로 가질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쪽의 전향된 자세를 좀 더 강조하고 있죠. 하지만 현실적 상황은 녹녹치 않아 보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경기침체와 생산성을 가지지 못한 올림픽 개최에 따른 국력 소모, 그리고 국경 개방에 따른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이미 일본은 온건하게 협상에 임할 공간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자신보다 낮은 자에게 경제적으로 격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불러오는 심리적 불안감과 패배의식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임할 여유조차 잠식하는 상황입니다. 상대방의 이런 무력한 상황을 고려할 때 결국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해야 할 측은 우리, 대한민국이 좀 더 현실적일 듯 싶습니다만 이 또한 현재의 국민감정과 현 정권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정체성을 감안할 때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답은 명확한데 과정이 어려운 한일 관계, 작지만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은 강선생의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을 통해 깊히 사유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드리며 블로그를 마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