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올드) -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잘 느끼지 못하는 '생노병사'를 생각하게끔 해주는 영화
본 글에는 많지는 않지만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정도 스포일러가 영화를 음미하는데 큰 방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걱정되시는 분들은 뒤도 돌아가시길 권장드립니다!!
영화 '올드'에 대한 글쓰기는 개봉한지 5일째 되는 날까지 '평이 신통치 않다'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23일 오후 현재까지 이 영화의 포털 다음에서의 평가는 7점입니다. 대중적 관점에서 제가 느끼고 있는 평점 7점은 못볼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추천하기는 조금 껄끄러운 애매한 점수입니다. 제가 영화를 관람한 토요일에 6점대 후반이었으니까 2일간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포털의 점수를 영화 관람에 중요한 지표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근거로 사용하기 선뜻 내키지 않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영화 올드는 애매한 평점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는 낮은 평점의 주요 원인으로 영화의 주제를 포괄하지 못한 '장르 설정'을 꼽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영화 범주의 한계인지 아니면 마케팅 담당자의 능력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공포/스릴러의 범주로 묶인 영화 올드는 대학자의 철학 강연을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철학자 사진으로 소개한 전단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전통적인 '공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악령이라던가 귀신이라던가 아니면 사이코패스의 엽기적인 살인 또는 저주 등은 이 작품의 요소와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반전 요소가 있긴 하지만 정도가 '유레카'를 외칠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전은 기승전결이라는 작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장치적 요소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만약 스릴러적인 요소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아간 관객이라면 영화가 끝난 후 실망감에 잠시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영화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의 흥행작 대부분이 극적인 반전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정도는 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앞의 요소 정도만 감안한다면 영화 올드의 관람을 통해 장르적 흥미와 반전을 뛰어넘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이 영화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도록 딱딱하지 않은 영상으로 풀어헤친 것이 특징입니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멈추고 늙다 병들어 죽는 것을 함축한 '생로병사'는 이를 강조하는 불교 교리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원리로서 특히 인간에게는 지식으로서 충분히 널리 공유되고 있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체화되지 않는 한 인식에 제한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이 진리는 평상시에 어느 정도 거리가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청년기의 건장했던 몸에 대한 기억이 어느 날 거울에 비친 탄력을 잃어가는 육체로 깨지는 순간,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부모나 반려자를 지금 이후부터는 절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정도가 이 진리를 다시금 곱씹어 볼 기회라고 할까요...
감독은 젊은 부부와 어린 남매로 구성된 가족을 중심으로 노모와 중년 의사, 그의 젊은 정부와 딸로 구성된 가족 및 랩퍼 등 서로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을 강렬한 에너지의 발산으로 노화를 촉진시키는 고립된 공간에 가두고 그들의 행동을 살피는 영화적 설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쉴틈 없이 생노병사의 굴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이 고립된 공간의 비밀을 몰랐던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변화, 예를 들어 늙은 노모의 죽음과 어린 남매의 성장 그리고 몇 가지 설정이 주는 사건 등을 통해 사람들은 생노병사를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속화된 이 법칙이 지배하는 장소를 벗어나고자 부단히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모두 예상하듯결과는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등장인물 누구도 이 '만물의 원리'에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럼 '인간은 어쨌든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다는 우울한 사실의 증명'이 영화의 주제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백미는 가족이 깊은 밤 모닥불에 모여 서로를 보듬켜 안는 장면입니다. 왜 여기에 놓이게 된 이유도 알지 못하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 충동적 행동, 개별적 일탈 등으로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는 긴 만겁의 시간 속 관계에서 잠깐 햇빛에 반사되어 크게 보이는 티클일 뿐 시간이 지나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결국에는 기억도 나지 않는 '헤프닝'에 불과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죽음으로 헤어지겠지만 있는 동안 너무 소중했던 존재들이기에 변화가 계속되지만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소중한 이들에게 충실하자는 것이 감독이 주고자 하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주 억지스럽게 영상화 되어 볼 때마다 거북스러웠던 미국적 시각의 가족애조차 이런 배경 속에서는 차분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상업영화이기에,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기에 극작가와 연출가는 반전이라는 장치를 구비해 놓긴 했습니다. 그러나 생노병사라는 큰 주제 앞에서 지식을 악용하는 악덕기업, 윤리 앞에 무관심한 연구원들 그리고 약간의 트릭과 해소 등은 큰 임팩트를 주기엔 너무나 왜소했고 감독 또한 그렇게 강조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영화가 주는 반전은 영화를 통해 감독이 주려고 했던 메세지에 얹혀가는 작은 이벤트 정도로 그 효과가 축소된 느낌입니다. 당연히 '반전' 특화 감독 이미지와 장르가 주는 선입견에 넘 몰입한 관객에게 영화 올드는 좋은 평점을 얻기 힘들듯 싶습니다.
오랜만에 영화가 끝난 후 깊은 여운을 가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저랑 다른 관점을 가진 분들에게 이 영화는 상업적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 졸작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번 인생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분들이 혹여 낮은 평점으로 인해 그런 기회를 놓칠까봐 제 관점에서 영화평을 적었습니다.
참, 부과하여 설정상 오류라고 느껴지는 부분을 적을까 합니다.
이미 성장한 성인들이 나이들고 병들고 마지막에 죽음을 거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달리 처음에 해변에 온 아이들의 나이가 11살과 6살에 불과하는데 급격한 육체적 성숙 속에서 갑자기 단계를 건너뛴 지적 수준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제한된 시간에 영화를 전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설정의 한계라고 생각됩니다.